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델타 포스 (문단 편집) ==== 1990년대 말 ~ 2000년의 아프간 작전 ==== [[오사마 빈 라덴|빈 라덴]]과 [[알 카에다]]는 이미 1990년대부터 미국을 상대로 각종 테러를 저지르며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고, 이 탓에 90년대 말경부터 이미 아프간에서는 CIA가 마수드의 군벌과 회합을 가지는 등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공작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실무자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델타 포스를 비롯한 병력을 투입해서 빈 라덴을 체포 또는 사살하려는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는데, 이는 아프간 내부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의 여러가지 문제는 물론, '''93년의 아이디드 체포작전의 유혈극이 아직도 생생한 까닭에'''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대신 해군이 아프간의 알 카에다를 향해 토마호크를 발사했지만, 빈 라덴의 숨통을 끊지는 못하고 오히려 빈 라덴의 화를 더욱 돋구고 말았다. 결국 2000년에 다시 빈 라덴 체포작전을 계획한다. 60여명의 델타 포스(일설에는 델타포스와 DEVGRU의 합동부대라는 이야기도 있다...) 대원들을 동원해 아프간에 침투시켜 빈 라덴을 잡아온다는 작전으로, 2000년 즈음엔 1998년과 달리 군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던데다 CIA 역시 아프간 내에 상당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던 탓에 작전 성공 가능성도 상당했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결국 이 계획도 포기하고, 후임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 문제에 대해 클린턴만큼의 개념도 없었다.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2001년 1월 들어선 부시 행정부는 알 카에다와 같은 비국가 무장세력을 상대하는 대신 마치 냉전시대의 외교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정책을 실행하며 적대 국가들의 위협에만 치중했다. 그들은 탄도 미사일 방어를 비롯해 기타 고급 방어체계에 역점을 뒀고 불쾌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테러 분야는 소홀히 했다. 공작원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클린턴 행정부 때와 어떤 차이도 느낄 수 없었다. 굳이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백악관이 알 카에다에 대해 훨씬 더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었다. 새 행정부는 알 카에다를 상대하는 우리의 전략을 수정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다른 많은 문제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은 것 같았다. 무엇을 새로운 전략으로 삼아야 할지에 대해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다. 알 카에다에 대해 백악관이 특정해서 제기한 것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은 알 카에다와 이라크의 동맹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도 대테러센터의 한 분석가가 2001년 여름에 내게 말해서 알게 된 것이었다. >'''"부통령실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의 동맹에 대해 알고 싶어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운을 땠다.''' >"무슨 동맹이라고?" 내가 물었다. >'''"[[딕 체니|부통령]]께서 알 카에다와 이라크 사이의 동맹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협력하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식인지를 물었습니다."''' >"이번 주에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멍청한 질문이군."[* 후세인은 이라크 [[바트당]]을 집권기반으로 삼았는데 바트당은 민족주의와 세속주의를 내세운 정당이다. 당연히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와는 사이가 좋을 수가 없다...] >"부통령께 그렇게 말하기를 바라세요?" 분석가가 물었다. >"어… 그렇지는 않아."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후략) > >헨리 A. 크럼프턴 저, '첩보의 기술' (The Art of Intelligence) '''그리고 그 [[9.11 테러|결과]]는 [[이라크 전쟁|믿기 힘든 참혹한 현실이 되어]] 21세기의 시작을 알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